버니 조 "K팝, SNS 붐 만나 '퍼펙트 스톰' 일으켜
"한국 음원 시장, 아티스트 위주로 재편돼야 더 발전"
(서울=연합뉴스) "4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K팝이 이처럼 빨리 전 세계에서 붐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 같아요. 한류와 소셜 미디어 붐이 만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거죠."
K팝의 해외 유통·홍보 전문가인 DFSB 콜렉티브(Kollective)의 버니 조(한국명 조수광·41) 대표는 최근의 'K팝 열풍'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5일 코엑스의 '2012 국제콘텐츠컨퍼런스(DICON 2012)' 행사장에서 만난 조 대표는 아이튠즈와 유튜브, 트위터·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로 이뤄진 '디지털 에코 시스템(Digital Eco-System)'이 한국 가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한국 가수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정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죠. 일단 국내에서 떠야 하고, 그 뒤 메이저 레이블로 옮기고, 거기서 다시 '흥행력'을 인정받은 뒤에야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게 관례였으니까요. 디지털 에코 시스템은 이 체제를 완전히 바꿨죠. 이젠 국내에서 한번 인기를 얻으면 리얼 타임(실시간)으로 월드 와이드 스타가 되는 것도 가능한 시대입니다."
그는 디지털 에코 시스템이 낳은 대표적 성공 사례로 가수 싸이를 들었다.
"유튜브 덕에 전 세계 사람들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고, 싸이와 그의 음악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튠즈를 이용해 '강남스타일'의 노래도 바로 들어볼 수 있었고요. 또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강남스타일'에 대한 감상과 관련 이슈를 실시간으로 전파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강남스타일'에 열광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에코 시스템 덕에 월드 와이드 앨범을 낸 것과 같은 효과를 본 거죠."
조 대표는 싸이가 '퍼포머'가 아닌, 직접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듀서라는 점과 미국 유학을 한 덕에 영어에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사실 싸이는 전형적인 'K팝 스타'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죠. 나이가 많은 편이고 '몸짱'이 아닌데다 춤도 여타 보이그룹·걸그룹과 비교하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퍼포머'가 아닌 '아티스트'라는 점이 중요해요. 퍼포먼스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만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로 성공했으니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은 거라 볼 수 있죠. 또 그분은 무척 '펀(fun)'한 스타일이잖아요. 그런 사람을 싫어하긴 어렵죠.(웃음)"
그는 "싸이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협업)은 서로에게 상당히 유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국 가수들에 대해서도 "한국 가수들은 유난히 음원 유통 주기가 짧은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나"라면서 "노래도 좋고 라이브 실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재미교포 2세인 조 대표는 미국 MTV를 비롯해 채널 V 코리아, MTV 코리아 등 다수의 음악 채널에서 VJ·프로듀서로 활동한 대중음악 전문가다.
그는 미국 MTV 근무 시절인 2007년 아이팟 터치를 구입하기 위해 뉴욕의 애플스토어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디지털 음원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뉴욕의 MTV 본사 앞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서 있는 거에요.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가 보니 애플 스토어에서 아이팟 터치를 사기 위한 줄이었어요. 그날 출시됐거든요. 그걸 보며 깨달았죠. 음악팬들은 앞으로 TV나 PC 같은 빅 스크린이 아닌 손안의 스크린, 즉 스마트 기기로 음악을 소비할 거라는 점이요."
그는 뜻이 맞는 동료와 1년간 준비를 한 끝에 DFSB 콜렉티브를 세우고 디지털 음원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로부터 한국의 ISRC 매니저(국제 규격 레코딩 코드 등록 대행사) 자격을 얻은 조 대표의 회사는 힙합 뮤지션 타이거JK·윤미래와 계약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한국 가수들의 음원 해외 유통 및 홍보를 대행해 왔다.
현재 DFSB 콜렉티브과 계약을 체결한 한국 가수들은 총 350여팀에 이른다고 한다.
조 대표는 "DFSB 콜렉티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K팝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Creative Agency)'라고 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음원 공급부터 미디어 홍보, SNS 홍보, 비자 발급 및 항공편·숙소 마련 등 K팝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우리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티스트입니다. 사업 기획 단계부터 수익 배분까지 모든 의사 결정 단계에서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철칙이에요. 아티스트가 행복해야 음악 산업도 사는 거니까요."
그는 "한국은 200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음원 시장이 피지컬 앨범(오프라인에서 출시되는 음반) 시장을 넘어섰을 만큼 디지털 음악 산업에서 앞서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면서 한국 음반 시장의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음원 수익 배분 구조 개선을 첫손에 꼽았다.
"싼값에 여러 곡을 다운로드·스트리밍 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음원 정액제) 때문에 음원 한 곡 당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60원에 불과합니다. G20 정상회의를 연 나라의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음원 수입이 선진국 평균의 1/20에 불과하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지난달 1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뮤직비디오 사전 등급 심사제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디지털 에코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리얼 타임으로 뮤직비디오를 소비하는 시대인데 왜 옛날식 장치를 두려고 하는지 답답합니다. 어차피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서도 자체 심의를 하거든요. 가수들의 해외 활동에 장벽이 되는 제도는 개선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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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정 기자 rainmaker@yna.co.kr